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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들 이야기

[시인의 오두막] 오늘 농업대학 졸업식장에서 낭송한 자작시입니다



농업대학 공부를 마치며

 

채홍조

눈부시도록 화려한 자태를 뽐내던
단풍들의 아리따운 미소가 점점 엷어가고
매끄럽고 빛나던 얼굴에 윤기는 메마르고 주름살만 늘어가며
찬바람에 파르르 떨다 발밑에 차곡차곡 쌓이다가
우우우 날리기도 하는, 어딘가 따뜻한 곳이 그리운 날입니다

낙엽 수북한 오솔길을 걸으며
잊고 살던 옛 추억 한 가닥 살며시 꺼내보고 혼자 웃고 중얼거리다
누군가 옆에 있으면 더 좋을 것 같은 마음이 들기도 하는,
가을은 모두가 시인이 되는 계절이라지요
가을이 깊어 가는 만큼 생각도 깊어지고
우리 인생도 점점 단풍색으로 채색되어
가꾸고 아끼던 날들이 알곡으로 곱게 여물어 가는 것 같습니다

꽃피는 계절에 만났던 학우님들 농사지으며 공부하랴
그동안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이제 그 꽃들이 황금빛 열매로 알알이 여물어
곳간을 차곡차곡 채우고 가족의 밥상은 더욱 풍성하고 건강해질 것입니다

만남은 언제나 기쁨으로 빛나고
배움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삶을 푸르게합니다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리듯 바쁜 일상의 한구석을
조금은 맑은 여백으로 남겨두고
마음의 곳간을 조금씩 채워가며
서로 격려하고 공부하며 힘든 길 함께 가는 우리는
같은 화두를 가지고 같은 쪽을 바라보며
일주일에 한 번이나마 마음 가득 새로운 희망을 담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 선조님들의 슬기로운 농삿법을 기반으로
보다 나은 영농법을 연구하고 실천하며
질 좋은 먹거리를 생산하고 도시의 소비자와 직거래하여
상호 이익을 추구하는 지혜를 배우고
호미 잡든 굵은 손가락으로 더듬거리며 치는 어눌한 좌판도
이제 제법 매끄럽게 건판을 두드리며 고운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생명을 만드는 일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하늘이 도와주지 않으면 이룰 수 없어
자연의 섭리를 깨닫고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며
인간이 창조할 수 없는 생명을 키우고
신을 닮아, 도를 닦는 마음으로 기다림을 배우는 과정 같습니다

우리가 키운 농산물이 모든 생명을 이어가는
만고 불멸의 업으로 자손 대대로 전해지며
작은 물방울들이 모여 강이 되고 바다가 되듯이
농촌을 아끼고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우리 삶의 터전을 더욱 발전 계승하고
나아가 세계에 우리 먹거리와 식생활의
우수한 영양과 맛을 보존하고 알리는데 다 같이 노력하며
늘 모든 사람이 꿈꾸는 멋진 미래의 고향으로 가꾸며
오늘 공부를 끝내는 것이 아니라 더욱 열심히 연구하며 노력하여
행복한 삶을 지향하는 분수령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091125

졸업식장에서 낭송한 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