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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들 이야기

[시인의오두막] 물주기



by newflo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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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주기

채홍조

새벽에 일어나니 앞산도 뒷산도 사라지고

시야는 온통 우유빛이다
기다리는 비는 왜 그리 오기 싫은지

연일 일기예보는 공수표만 남발하고
태양은 불볕더위를 데리고 여유롭게 얼굴을 내민다
 
장마라며 비는 오지 않고 밭곡식들은 이제 지쳐서
잎마져 축 늘어뜨리고 기운 없이 헐떡인다.
며칠 전에 물 주고 심은 어린 들깨는

숫제 허리는 푹 숙이고 주저앉아 기절하였다
2 미터도 넘는 키를 자랑하며 서슬푸르던 옥수수도

팔뚝만 한 옥수수를 업고
큰 칼같은 잎을 도르르 말고는 목 마르다 아우성친다.
 
보다 못해 경운기를 끌고나가
호수 옆에다 겨우 주차하고는 호수의 물을 퍼 올려
곡식들의 타는 발등에 부어준다 
 
탕탕 경쾌한 경운기의 박동소리가 울리고
200 미터의 긴 호스를 따라 쿵쿵 심장이 뛰면서
시원스레 물줄기를 토해낸다.
 
호스에 연결된 뾰족한 삼각 수도꼭지로
옥수수포기 옆에 구멍을 뚫고 물을 가득 채워주면
옥수수들은 금세 생기를 되찾고 환호성을 지른다.
옅은 옥수수꽃 향기가 숲을 흔드는 바람결에 묻어나고

이제 튼실한 알맹이를 채워 보답하겠지 

1시간 두 시간 무려 9시간 반 동안
남편과 교대로 옥수수와 다른 곡식들에 물을 주었다
나는 오전과 오후 두 차례 집으로 돌아와
화분에 물주고 간식을 만들어 나갔다
 

딱딱하던 흙이 말랑해지고
곡식들에게 오늘은 목마름을 해갈하는 행복한 날이었다

900 여 평의 밭에 물을 다 주고 나니 저녁 6시 30분
뒤 돌아 본 이랑의 곡식들은

저마다 독특한 향기를 뿜고 반짝이며 새파랗게 생생 웃고 있다

우리는 온몸에 염천이 흘러 얼굴은 벌겋게 달아 오르고
찬물을 너무 많이 마셔서 밥맛도 기운도 다 달아나고 없다

 

2008년 7월10일